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스 2세 (문단 편집) == 여담 == * 사적으로는 대단한 [[호색한]]이어서 보통은 한두 명 두는 [[로얄 미스트리스]][* 표현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 유럽 국가들의 궁정 사회에서는 왕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애첩 한두 명은 거느리는 것이 관례였다. 가부장적인 전근대 사회에서는 남성은 호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않는 남성은 성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폄하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에서도 애첩 하나 없는 왕은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해서 설령 애정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한 명은 두는 경우가 많았다. [[루이 16세]] 같은 경우 애첩을 두지않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충실했는데, 도리어 성불구라는 악성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본인이 애첩을 두느라 왕이 애첩을 두지 않은 원인이라 하여 비난을 받았다.]를 14명이나 둬서 궁중에서 정부들끼리 신경전이 벌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수많은 사생아를 두어 '국민의 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찰스 2세의 사생아를 조상으로 둔 영국의 귀족과 상류층들은 현재까지 대를 이어 가문을 유지하고 있다.[* 아래에도 후술하지만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도 조상 중에 찰스 2세의 사생아가 있다. 또한 [[조지 5세]]의 셋째 며느리였던 [[앨리스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앨리스 왕자비]]의 가문인 버클루 공작 가문도 4대 버클루 여백작이였던 앤 스콧이 찰스 2세의 사생아인 [[제임스 스콧]]과 결혼하면서 공작으로 승격되어 창시된 가문이다.] 그렇지만 크롬웰이 펼친 청교도적인 엄숙함에 짓눌려 있던 당시 잉글랜드 국민들은 오히려 이러한 호색적인 행각을 한편으로는 반겼다고 한다. 찰스 2세 본인도 [[제임스 1세|자기 할아버지]]처럼 꽤 유쾌한 성격에 근본적으로는 선량한 성격이라 인기는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국정운영 방식은 할아버지 [[제임스 1세]]와 비슷했다. 유연성과 의회간의 협력적인 통치방식, 재위기간도 무난하게 보냈다는 점에서 특히 비슷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찰스의 동생이자 후임 국왕인 [[제임스 2세]]는 여러모로 아버지 [[찰스 1세]]와 비슷한데, 능력과 인품은 출중했지만 독선적인 국정운영방식 때문에 의회와 대립하여 의회의 쿠데타로 축출당했다는 점이다. * 찰스 2세의 정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클리블랜드 여공작 [[바바라 팔머]]인데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현장을 왕에게 몇 번이나 들키고도 무사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태어난 아이를 왕이 자식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자 화이트 홀에서 아이의 머리를 박살내 죽이겠다고 협박해 찰스 2세의 인정과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총애를 받으면서도 돈을 받고 몸을 팔겠다고 나서는 등[* 실제로는 하녀를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뜯어낸 하룻밤 화대가 1만 파운드였는데 그 돈으로 존 처칠을 후원해 줬다고. 그리고는 정말로 자기랑 자고 싶으면 한 번 더 1만 파운드를 내라는 말에 이번에는 상대가 거절했다고 한다.] 제멋대로라 신하들은 품위 있는 [[루이즈 드 케루알|마담 케루알]] 쪽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다만 마담 케루알은 프랑스 귀족 출신이라 국민들에게는 나라 팔아먹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고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국민들은 서민 출신에 성격이 솔직하고 화통한 [[넬 그윈]]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 [[포르투갈 왕국]] [[브라간사 왕조]]의 공주 [[브라간사의 카타리나|카타리나]]와[* [[주앙 4세]]의 딸로 결혼하면서 잉글랜드가 포르투갈에 무역 혜택을 주는 조건으로 주앙 4세가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하여 왕비로 맞이했으나 왕비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고,[* 아이를 유산한 이후에 몸이 크게 상해서 더이상 임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잉글랜드의 신하들이 찰스 2세에게 카타리나와 이혼하고 새 왕비를 맞이하라고 간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찰스 2세는 왕비를 신뢰하는터라 신하들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고, 카타리나는 찰스 2세가 죽을 때까지 왕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모두 사생아였다.[* 대표적으로 바바라 팔머와의 사이에서 낳은 그래프턴 공작 헨리 피츠로이(헨리 8세의 서자와 동명이인)가 있는데 그의 후손으로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있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남이자 현 영국 왕세손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가 왕위에 오르면 이후로는 영국 왕실이 찰스 2세의 혈통도 이어받게 되겠지만, 애초에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왕실([[왕위 요구자]] 가문 포함)들은 귀천상혼제나 살리카법은 포기할지언정 사생아에게 왕위 계승권이 없는 것만큼은 계속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에,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이후의 영국 국왕들에겐 찰스 2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 자체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사생아 아들들 중 6명은 공작위를 받았고 그 중 4명의 가문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공작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은 모두 서자인터라 잉글랜드 왕실의 엄격한 왕위 계승법으로 인해 결코 왕세자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유언에 따른 후계자는 찰스 2세의 동생 제임스였고 찰스 2세 사후 [[제임스 2세]]로 왕위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찰스 2세의 사생아 중 장남인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은 이에 불만을 품고는 왕위를 요구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하고 처형되기도 했다. 한편 카타리나가 잉글랜드에 올 때 시동생되는 제임스 2세가 맞이하러 나갔는데 이때 그녀가 "차 한 잔 주시겠어요?"라는 말을 건넸다. 당시 포르투갈은 해외 식민지의 부로 왕실이 부유했고 사치품인 차를 넉넉하게 마실 수 있었던 것을 보여준 사례. 한편 당시 잉글랜드는 차 문화가 널리 퍼지기 전이었고 또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아 [[왕립학회]]를 왕명으로 공인하였으며, 이후에도 계속 후원했다. [[연금술]]에 관심이 많아 이 때문에 사망했다는 이야기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아이작 뉴턴]]과 동시대 사람이다. * 제임스는 [[가톨릭]]교도였는데, [[토리당]]은 그를 지지했고 장로파였던 [[휘그당]]은 반대했는데 사실 휘그당이 생기게 된 계기가 바로 제임스 2세를 반대하기 위해 모인 일이었다. 전자는 영국 [[보수당(영국)|보수당]]의, 후자는 영국 [[자유민주당(영국)|자유민주당]]의 조상 격 되는 당파들이다. * 재임 기간 중에는 1678년 가톨릭 교도 음모 날조 사건도 있었다. 전직 예수회 사제였던 타이터스 오츠(Titus Oates, 1649~1705)는 가톨릭 교도들이 찰스 2세를 암살한 뒤 동생 [[제임스 2세|요크 공작 제임스]]를 즉위시키고 이후 장로파 등 개신교 신자들을 학살한다는 음모를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이를 당시에는 '교황의 음모(Popish Plot)'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매카시즘]] 수준의 광풍이 불어서 곳곳에서 가톨릭 교도에 대한 린치가 발생했고, 제임스 본인도 3년간 스코틀랜드로 쫒겨나다시피 떠나야 했다.[* 이때 [[존 처칠]]도 제임스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갔다. 이후 잉글랜드로 돌아온 뒤 제임스를 보필한 공을 인정받아 남작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존 처칠은 명예 혁명 때 윌리엄 3세 & 메리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후 오츠의 주장은 날조되었음이 밝혀졌다. 이 난리를 일으킨 장본인 오츠는 내란 선동 및 [[허위사실유포죄]]로 길거리에서 묶여진 채로, 사람들에게 욕설과 침과 달걀 세례를 당하고 채찍으로 맞는 등 온갖 모욕을 당한 뒤 거액의 벌금과 종신형을 받았다. 그나마 찰스 2세의 사후 [[명예혁명]]이 일어나면서 석방되었고 연금도 받았지만, 남은 평생을 거짓말쟁이 오츠라는 비웃음과 놀림을 당하며 숨어살아야 했다. * 취미가 설계였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설계한 함선의 진수식이 있어서 참석한 와중에 옆에 있던 시종장에게 "어떠하냐? 짐은 함선 설계자로서도 손색이 없지 않느냐?"로 물으니 옆의 시종장이 대답하기를 "[[왕|본업]]보다 [[천계제|훌륭하십니다]]."라고 했다. * 1685년 찰스 2세가 사망한 이후 국왕의 이름으로서 찰스라는 이름은 거의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쓰이지 않다가, 2022년에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분류:잉글랜드 국왕]][[분류:스코틀랜드 국왕]][[분류:아일랜드 국왕]][[분류:웨일스 공]][[분류:콘월 공작]][[분류:스튜어트 가문]][[분류:1630년 출생]][[분류:1685년 사망]][[분류: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장자]][[분류:프랑스계 영국인]][[분류:웨스트민스터 출신 인물]][[분류:가터 훈장]][[분류:영국 토리당 당수]][[분류:프랑스 왕위 요구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